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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랜드 대전 | 랜드 전쟁
第二次ランド大戰 | 大戰爭
Second Land War | The Hot War of Land
기간
1973년 7월 14일 ~ 1976년 10월 2일
(종전 후 D+18087)
장소
랜드해협 전역, 북산, 청평 국경지대 및 인근 해상
원인
냉전 구도의 파국적 격화와 안보 딜레마
해상 교통로·자원권을 둘러싼 이권 분쟁
민족주의·이념 대립의 군사적 충돌
국지전이 연쇄 확전되며 "콜드 워"가 "핫 워"로 전환
교전국
연합국(자유진영)
동맹국(공산진영)
지휘관
[ 펼치기 · 접기 ]
루이나 – 리처드 잭슨 대통령
플로렌시아 – 자크 르몽 총리
웨스타시아 – 하인리히 폰 슈타이너 연방수상
빌베른 – 알렉산드르 노바크 대통령
북산 – 오가미 잇토 내각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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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 – 황제 류톈화
동사랜드 – 레 꽝민 서기장
사비에트 – 이반 로마노프 서기장
고랜드 – 무하마드 알자히르 칸
체르드 공화국 – 아르만 체르노프 대통령
라 마베라 연방 – 마테오 콘티 총리
병력
[ 펼치기 · 접기 ]
연합국 총동원 약 12,483,560명[1]
- 루이나 3,642,110명
- 플로렌시아 4,108,730명
- 웨스타시아 2,215,940명
- 빌베른 756,820명
- 북산 1,759,960명
[ 펼치기 · 접기 ]
동맹국 총동원 약 11,927,440명[2]
- 청평 4,608,220명
- 사비에트 3,512,670명
- 동사랜드 914,530명
- 고랜드 812,040명
- 체르드 공화국 1,124,860명
- 라 마베라 연방 955,120명
결과
연합국의 승리, 동맹국의 패배
영향
랜드해협 질서의 재편과 봉쇄선 확정
일부 국가의 체제 불안정 심화 및 내전성 분열의 씨앗
루이나 중심의 연합국 패권 강화 및 군사동맹 고착화
피해규모
사망 약 3,146,280명
부상 약 6,021,940명
실종 약 642,310명
총 사상자 9,810,530명[3]
사망 약 3,889,770명
부상 약 6,777,430명
실종 약 821,540명
총 사상자 11,488,740명[4]

1. 개요2. 서론3. 원인4. 발단
4.1. 혼란한 자유진영4.2. 공산 진영 내의 정치적 불만 고조4.3. 마베라와 체르드의 공산화4.4. 북산과 청평의 지속적인 분쟁
5. 발발 과정
5.1. 제 3차 청북전쟁5.2. 마베라 내전5.3. 루이나의 체르드 침공
6. 전쟁 당시 전황7. 연표8. 주요 전선9. 참전국
9.1. 연합국9.2. 동맹국
10. 피해와 전쟁범죄11. 전후 연합국12. 전후 동맹국13. 영향14. 기타15. 여담16. 관련 어록17. 관련 인물

1. 개요 [편집]

2. 서론 [편집]

3. 원인 [편집]

4. 발단 [편집]

4.1. 혼란한 자유진영 [편집]

4.2. 공산 진영 내의 정치적 불만 고조 [편집]

4.3. 마베라와 체르드의 공산화 [편집]

4.4. 북산과 청평의 지속적인 분쟁 [편집]

5. 발발 과정 [편집]

5.1. 제 3차 청북전쟁 [편집]

5.2. 마베라 내전 [편집]

5.3. 루이나의 체르드 침공 [편집]

6. 전쟁 당시 전황 [편집]

7. 연표 [편집]

8. 주요 전선 [편집]

9. 참전국 [편집]

9.1. 연합국 [편집]

9.2. 동맹국 [편집]

10. 피해와 전쟁범죄 [편집]

11. 전후 연합국 [편집]

12. 전후 동맹국 [편집]

13. 영향 [편집]

14. 기타 [편집]

15. 여담 [편집]

16. 관련 어록 [편집]

17. 관련 인물 [편집]

[1] 동원 병력은 각국의 예비군·후방지원인력 일부를 포함한 추정치.[2] 동원 병력은 각국의 치안·민병·군수인력 일부를 포함한 추정치.[3] 군사 인명피해 추정치. 민간 피해와 난민은 별도 산정.[4] 군사 인명피해 추정치. 전황 악화로 포로·실종 집계가 불완전했던 시기가 있어 오차가 큼.